1. 운명의 총소리 10.26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맞고 숨졌고, 기나긴 20년간의 3공화국과 4공화국의 역사가 끝났다. 이에 따라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였지만 사실상 영향력이 부족하여 대통령 자리는 공석이나 마찬가지였다. 10.26을 수사하던 전두환 휘하의 부대는 조사를 위해 10.26 사태 당시 김재규와 잠시 머물렀던 정승화 총장을 조사를 위해 연행하던 도중 의도치 않은 총격전이 벌어졌다.
2. 12.12 쿠데타
예편될 위기에 놓여있던 전두환 보안 사령관은 총격전까지 벌어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쿠데타를 모의한다. 노태우와 허화평 그리고 유학성과 장세동 등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멤버들과 부하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이 되자, 회원들 휘하의 병력을 이동시키고 보안 사령부의 첩보력을 총동원해서 국방부와 수도방위 사령부 등을 장악한 뒤에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군대 내이고 그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위해 또 한 번 쿠데타를 계획한다.
3. 5.17 쿠데타
군부를 장악해 전군의 군사통 제권을 얻은 전두환 보안 사령관은 병력을 동원해 정치인들과 거슬리는 인물들을 5월 17일이 되는 날에 즉각 체포한다. 이에 반발하여 전국에서는 군중들이 데모를 했고 그는 또다시 경찰들과 군병력을 이용해 시위꾼들과 구경꾼들을 진압한다. 그다음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정권 쟁탈을 위한 각종 행동사항을 마련했고, 대통령직에 있는 최규하에게 각종 회유와 협박을 하고 결국 최 전 대통령은 하야를 하게 된다.
4. 대통령에 당선되다
1980년 9월 1일 그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간선제를 통해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게 되고 이후 1981년 3월 3일 제5공화국의 헌법을 개정한 뒤에 이에 따라 7년 단임제로 다시 한번 당선되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5공화국이 시작된다.
5. 정권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해외순방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만난 외국 정치인은 바로 전두환이었다. 그만큼 그는 정권의 정당성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을 비롯한 캐나다, 미얀마, 미국, 영국, 독일연방공화국 등을 종일 돌고 돌으며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었고 레이건을 스토킹하다시피 쫓아다니려고 했고,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라는 발언을 하여 무엇보다도 미합중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애썼다.
6. 유화정책
뭐 업적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냥 독재자이지만, 민주화를 억압한 그에 대한 일부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전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정권이 전복될 위기에 놓일까 봐 전두환은 유화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시켜 밤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복도 자율화시키고 일제의 잔재인 두발 규제를 완화해준다. 또한 프로 축구와 야구의 시대를 열고 국민들의 관심을 오락 프로그램으로 돌리기 위해서 컬러 TV를 보급하고 지나치게 유교적인 편견을 없애기 위해 청소년 관람 금지 영상도 허용한다. 또한 IMF보다 3,4배 정도 심각했던 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빈민층과 학생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교육을 폐지하여 돈 없는 사람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했다. 또한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역대 최고로 높게 달성하였으며 중진국의 문턱에서 선진국으로 한 발짝 걸어들어갔다. 또한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기 위해서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유치하고 계획했다. 또한 의료보험을 확대하여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병원비를 10배 이상 값싸게 했지만 의사들은 보수를 적게 받게 됐다. 또한 민심을 얻기 위해 직접 이윤상 유괴사건에 가담하여 범인에게 "아이를 살리면 너도 살고 아이를 죽이면 너도 죽는다" 라고 말했다.
7. 몰락
그렇게 국민들 우롱해가면서 잘 나가다가 사건 하나가 터진다.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인데 이에 전국시민들은 분노하여 거리를 뛰쳐나왔고 이를 진압하는 경찰병력의 수는 한없이 적었다. 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대를 보내 이를 처리하려고 했지만 도중에 자기 같은 사람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위험이 있어서 두 손을 들고 민주주의를 인정하고 결국 7년간의 긴 시간의 5공화국을 접어두고 대통력직에서 물러나고 자동적으로 5공은 해체되고 이후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어 민주주의 헌법을 기반으로 한 제6공화국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