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최고의 리즈시절이였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고성장시대였고 1인당GDP는 현재가치로 계산하면 낮았다. 반면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에는 현재보다 GNP가 2.7배만큼 높았고 말그대로 당시나 지금이나 그정도 금액으로 환산해보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나라나 다름없었다. 버블경제시절은 도대체 어떻길래 아직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이 80년대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1. 당시의 고졸과 중퇴자 그리고 전교꼴찌들의 생활
흔히 공부도못하고 할줄아는게없으면 엠창인생이라고 불리면서 다시태어나는게 답이라고들한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는 그런것도 존재하지않았다. 일명 별능력없는 지잡대 졸업자들도 국내최고기업아니면 입사하지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들이많았으며 회사들은 젊은이들을 스카웃하기에 바뻤고 결국 아무능력도없는 사람이라도 20대 30대이면 무조건 취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꼭 정규직에 들어갈필요없이 아르바이트만해도 월급이 적어도 300만원 이상씩은 나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평소에는놀다가 필요할때 일을하는 일명 프리타족이 유행했다.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노가다를하면 무려 연봉이 한화가치로 4억이 넘어갔다.
2. 평범한 취업준비생의 일상
일손이 부족해서 도산하는 회사가 있을만큼 온갖 기업들은 국가내에있는 모든 인력들을 어떻게든 엄청난 보상을 줌으로서 스카웃할려고 애썼다. 특히 어느회사에 입사시험을하러가든지 받을수있는게 바로 교통비인데, 기름값과 버스값과 택시비등 현재 한화가치로 몇십만원을 넘게 지급했다. 그래서 일부사람들은 따로일을하지않고 모집공고를보고 이곳저곳에가서 면접을본뒤 고의로 탈락하고 교통비만 받아내가지고 먹고살았다. 반면 정식으로 입사한 신입사원같은경우 적어도 연봉이 2억이넘었고 1~3년정도 일하면 내집마련을하고도 돈이남아돌았다. 또한 고용주들은 이들이 퇴사하는것을 막기위해 해외여행을 시켜주기도 하였고, 보너스도 장난아니게줬다. 더군다나 취업시엄도중에 대충답안을말하거나 잠깐 잠에들어도 수석으로 합격하는경우도 많았다고한다.
3. 저소득층의 생활
아무리 가난했던 가정이라고해도 1980년대 일본에서는 해외유학을가도 돈이남아돌을정도였고, 미국에가서 헬기를타고 샴페인을 터뜨릴수있을정도였다. 그리고 삼시세끼를 동네에있는 이름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을수있었다. 저소득층이 이정도인데 중산층은 어떨까?
4. 중산층의 생활
버블경제 시기에 일본내에있는 중산층들은 요트와 초거대선박인 크루즈를 미친듯이 구매했다. 그리고 아들이나 딸이 대학에 입학하게 될경우 기념품으로 최고가의 외제차를 선물해주기도했다.
5. 당시의 소비자들
상품의 질이나 양은 신경쓰지않고 무조건 가격이높은 제품만 구매했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를위해 무엇인가를 구입했지만 반면 아내의반응은 왜 이딴걸사오냐고 신경질적이였다. 여기서 대답이가관인데 남편은 제일비싸서 이걸샀다고말했다. 마찬가지로 집을구매할때도 평수나 층따위는고려하지않고 가격이 제일비싼걸 골랐다.
6. 버블경제시기 남녀사이의 관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있으면 남성들은 몇백에서 몇천만원가량의 돈을 쥐어주면서 사귀자고 하였고, 한번 데이트하는데 드는비용이 적어도 백만원은 넘어갔다. 또한 여자친구에게 온갖 꽃다발을비롯한 명품을 밥먹듯이 선물했다.
7. 기타
명절에 친척들의 집을돌면서 세배를하면 기본적으로 300만원은 얻을수있었고, 오랜만에봤다고 어른들은 10만원이넘는 용돈을 줬다. 그리고 동사무소나 우체국같은 정부기관의 건물들은 높이가 20~40층이 넘어갔고 딱히 일자리를 구하지않아도 파티현장주변에서 서성거리면 돈을받고 남의파티에 대신참석해줌으로써 먹고살수있어서 당시에는 파티족이 유행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히키코모리 같은 백수들한테도 매월 오백만원이 넘는 지원금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