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에 일본이 내전을 끝마치고 본토의 대부분을 통일한 상태에서 조선을 침공해 임진왜란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군들은 파죽지세로 부산에서 계속 북쪽으로 거의 모든전투에서 패전을해 후퇴를했는데, 왜군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가장큰 이유는 오랜 내전으로인한 대폭적인 전투경험이라고 볼수있지만, 조총도 큰비중을 차지했다.
1. 역사
<당시 서양에서 사용했던 아퀘부스, 이후 일본으로 전래되어 조총이 탄생하는 계기가된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불과 몇십여년까지만해도 분열된 일본은 조선군과 마찬가지로 창과칼 그리고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16세기에 무역을 하러온 포르투갈인들로부터 화승총 몇자루를 받게되는데, 어느 일본인이 그 화승총을 분해해서 따로 설계도를 제작하여 대량생산했고, 나쁘지않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냥용을 임시방편으로 대량생산한거기때문에 전투에서 한계가 있었고 이에 수많은 개량과 연구작업을 통해서 더욱강력한 조총이 탄생하게되었다.
<삼단사법>
하지만 조총에게도 취약한 약점이 있었는데 그건바로 연사력이였다. 아무리 숙련된 사수라도 1분에 3발이상 발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대부분 많아봤자 분당 2발정도밖에 발사할수밖에없었고 정신이없는 전투중에는 더욱이 연사력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전술을 도입하게되는데 그건바로 교차사격이였다. 일단 조총부대를 3~5열정도 맞춰놓고, 맨앞에있는줄이 사격을하면 다시 맨뒤로가서 계속 장전을하고 그다음줄이와서 사격을하고 그다음줄이 맨뒤로가서 차례가될때까지 장전을 하는 방식이였다. 위에있는 동영상을 참고하면 이해가 매우쉽다. 이런전술은 연사력이라는 문제점을 보안시켰다.
2. 위력
살상가능한 거리는 100m 정도로 그렇게 짧은편은 아니지만 실제로 유효사거리는 50m정도로 쉽게생각하면 조금큰 1자로된 수영장의 시작부터 끝까지라고보면되고, 50m 내에서 쏘면 대부분의 적들을 단한발로 무력화시킬수있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곡사화기가 아니라 직사화기이기때문인데, 일자로 쭉나가서 근접무기를들고 자신에게 뛰어오는 적을 대충 조준하고 격발을하면 강선이없어서 명중률은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높은확률로 아주쉽게 적을 사살할수있는반면 활같은경우는 국궁쏴본사람은 알겠지만 10m도 안되는 커다란 과녁에 명중시키기도 어렵다. 그리고 조총은 파괴력이 아주강한데, 특히 갑옷을 두툼하게 입고 싸우는 병사들의 갑옷을 아주쉽게 뚫은뒤에 단한번에 무력화시킬수있다.
3. 기타 장점
일단 굳이 활처럼 오랜시간동안 훈련시킬필요가없어서 간편해서 힘이약한 병졸들이나 노인병사들이 조총부대에 들어가는경우도 많았다. 거기에다가 직사화기에다가 모든갑옷을 쉽게 뚫어버릴수있어서 달려오는 기병도 활과는 달리 아주쉽게 제압할수있다. 한번은 신립의 기병부대와 일본의 조총부대가 전투를 벌였는데, 결과는 일본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또하나의 장점은 바로 단 몇주일간 훈련받은 농민병이 수십년동안 무예를 닦은 검객과 장수들을 아주쉽게 사살할수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총을 발사하면 큰소리가 발생하게되는데, 화약무기라는걸 접해본 경험이 적은 조선군들은 이소리에 겁을먹고 사기가 급격히저하되거나 도망치기 바뻤다고하고 달려오는 기마병들이 타고있던 말도놀라서 되돌아갔다고한다.
4. 단점
하지만 이런조총에도 단점은 존재했다. 일단 사정거리가 짧아서 적부대를 발견하게되면 항상 적의 궁병들로부터 먼저 공격을받은뒤에 싸울기회가 주워졌고, 정신이없는 시가지나 숲에서는 장전속도때문에 목표물을 맞추지못하면 공격할기회를 사실상 잃어버리기때문에 부무장을 지니지않은이상 살아남기 힘들다. 거기에다가 조총은 서로 모여서 싸워야 효과를발휘한다. 실제로 병자호란당시 조선군도 일부 임진왜란의 경험을 토대로 조총을 도입했는데, 교차사격술을 익히지않아서 자기멋대로 쏘고난뒤에 장전할틈도없이 무섭게 달려오는 청나라 기병대를보고 도망다니기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