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프랑스의 탄생
1940년에 나치독일군이 본격적으로 오합지졸인 프랑스군을 공격해 파리를비롯해 주요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토가 더이상 폐허가 되는일을 막기위해서 독일과 휴전을맺고 새로운 친나치정부를 수립한다.
그래서 탄생한 국가는 비시프랑스이다.
파랑, 흰색, 빨강의 3색국기는 그대로 유지하였지만 추가적으로 국장이 붙여져있다.
<비시 프랑스의 국가>
파리같은 주유도시는 모두 독일에게 갖다바친뒤에, 1차세계대전당시 큰공을세운 페텡을 국가원수로하여 비시를수도로한다.
추가적으로 아프리카에있는 식민지와 아시아에있는 인도차이나까지 모두 비시프랑스의 영토이고, 베트남에는 동맹국이나 다름없는 일본군에게 군사통행권을 내어주었다.
프랑스본토에있는 장정들은 강제로 전장에 나갈필요가없었지만, 식민지주둔군의경우 연합군과 전투를 어쩔수없이 치뤄야할 상황이 발생하기마련이다.
여기에서 재밌는점이있는데 임시망명정부라 볼수있는 자유 프랑스의 영향때문에, 과거의 동맹국이였던 영국진영에 전향하는 병사들도많았고 그냥 나는 군인이니까 싸워야지라는 마인드로 열심히총질을하는자도 있었다.
얼마뒤 1941년에 독소전쟁이터지자 비시 프랑스에서는 자원제로하여 반공산주의의용군을 편성해 전장에 내보낸다.
그리고 국가내에돌아다니는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위해서 병력을 이용한다.
나치독일의 입장에서는 괴뢰국이 아무도움도안되면 철저히 짓밟아 뭐라도시키거나 물리적으로 점령할수밖에없다.
사실상 식민지군과 의용군만 조금파견하고 물자지원만했던 나름살기좋은 비시 프랑스인들에게 히틀러는 1943년도부터 성인남성들은 강제적으로 노동을하라고 시켰고 이후 그들은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했다.
페탱은 아무저항없이 이말을 따랐다.
비시프랑스는 대규모로 2차세계대전에참전하지않고 스스로를 중립국이라 칭했지만, 연합군측에서는 괴뢰국으로 지정하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지 얼마되지않아 수도비시가먹혀버리고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1945년이후 페탱은 프랑스정부에의해서 체포를당한뒤 재판을받는다.
괴뢰국의 국가원수였기때문에, 반역죄로 사형당할위기에놓여있었지만 1차세계대전당시의 활약상을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갇혀지내다가 늙어죽는다.
반면, 비시정부의 다른인물들은 가차없이 목이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