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피의 1st 정보/역사

한국전쟁 초기 당시 국군이 밀릴수 밖에 없었던 이유

Cappie's Wiki 2015. 6. 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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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도대체 왜 국군은 단 3일만에 수도가 북한군에의해 함락되고 UN군이 오기전까지 파죽지세로 패배만하면서 뒤로밀렸을까?

 


1. 거의 없다시피한 초기대응


 

 

다들 알다시피 6.25전쟁은 일요일 새벽 4시에 발생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병사들의 반 이상이 휴가를 나가있었고, 지휘관들은 모두 장교 파티에서 술을 마셔서 취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남아서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 또한 새벽 4시라는 시간 때문에 대부분 잠을 자거나 졸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북한군으로부터 기습까지 당하니 국군은 지휘관의 명령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전멸하거나 후퇴하는 게 전부였고,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다.

 


2. 전차와 대전차화기의 심각한 부족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국군은 대전차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북한군의 T-34/85를 상대로는 후면을 노리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었다. 무반동총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며, 57mm 대전차 포는 후면이나 측면을 노리지 않는 이상 북한군의 전차를 격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M9 휴대용 로켓 발사기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수량이 부족했고, 적전 차를 파괴할 만큼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군은 전차를 1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기껏해야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몇 대가 전부였는데, M8에 장착된 37 mm 포를 가지고 T-34/85를 격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팀플레이로 1대를 격파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북한군 전차의 궤도를 부순 뒤 수리하러 나오는 승무원을 죽인 거에 불과했다. 이렇듯이 국군은 적전 차를 격파할 수단이 전혀 없었으며, 말 그대로 T-34/85가 1대라도 오면 후퇴하거나 자살공격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그 당시 미국이 일본군이나 나치 독일이 쓰다 버린 전차나 대전차화기를 조금이라도 줬으면, 적의 공격을 어느 정도 저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3. 없다시피한 공군전력


 

6.25전쟁 직전에 국군이 보유하고 있었던 항공기라고는 정찰기와 연락기 그리고 훈련기가 전부였고, 그 수량마저 북한 공군에 비해서 몇 배나 적었다. 그에 비해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나름 최신의 전투기를 공여 받았고 수량도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많았다. 우리 공군은 비행기에 기관총도 장착되어 있지 않고 폭탄도 제대로 장착할 수없어서 직접 포탄을 들고 손으로 던지는 1차 세계대전 방식을 사용했다.


4. 전력 차이


 

한국전쟁 초기에 국군의 병력은 9만 명이 전부였지만 북한군은 무려 19만 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우리의 패배가 확실했다.

 

만약,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장교들과 병사들을 정상적으로 근무시키고 미국으로부터 전차와 대전차 화기를 소량이라도 들여오고 징병제를 실시해 병력을 늘리고 어떻게든 항공기를 들여왔으면 오늘날 역사는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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