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피의 게임/기타

1992년 LA 흑인 폭동 사건 당시 한인

Cappie's Wiki 2015. 3. 2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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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3일 과속으로 달려가던 차를 추격하던 경찰들은 마침내 범인을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검거하는 과정에서 흑인 범인 로드니 킹을 대상으로 한 경찰봉과 손발을 이용한 수많은 폭행이 발생하게 되고, 이 장면이 지나가는 주민에 의해서 녹화되고 결국 뉴스에까지 방영되고 만다. 이후 12일 뒤인 3월 15일 폭행에 가담한 4명의 경찰관들이 기소되어서 재판을 받았는데, 3명은 무죄판결이 일어났고 나머지 1명은 다시 재판을 받도록 하였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를 뛰쳐나와서 시위를 벌이다가 주변에 있는 상점들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총까지 들고 나와서 경찰들과 총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국은 즉시 백인들의 거주 지역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미국인들과의 접촉도 얼마 있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생활하고 시민권도 없는 한국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항의가 들어왔고 한미관계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백인 거주지와 흑인 빈민촌 사이에 샌드위치로 끼어있었던 코리아타운은 폭도들의 왕래가 잦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또한 피해 상황이 다른 지역보다 심각해질게 뻔했다. 경찰도 군인도 없이 한인들은 자기 손으로 수많은 건장한 흑인 폭도들로부터 마을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돈 벌고 먹고살기 위해서 밟았던 꿈의 땅 미국에 와서 지난 세월 간 열심히 살았지만 지금은 그동안 모아오고 운영해왔던 자신들의 상점들과 돈이 폭도들에게 털릴 위기에 놓여있자 한인들은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군사정권 시절에 2년이 넘는 군 복무 경험이 있었고, 이를 토대로 주변의 한인 마트를 요새화하였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옥상에는 총을 든 사람들을 배치시켰다.

 

하지만 총기 라이센스를 획득한 한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따라서 이들이 보유한 총기들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마트 안에 있는 BB 탄 총을 모든 사람들에게 지급하면서, 흑인들로 하여금 이들이 많은 총기와 높은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겁을 주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방송국 헬기가 한인타운 주변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미니 건과 일반 총포사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자동소총과 미니건으로까지 무장한 한인들이 포착되었고 방송에 보도가 되었다. 이것을 본 흑인들은 하나둘씩 코리아타운을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코리아타운에 들어가면 시체가 돼서 돌아온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이들 중 특수부대나 해병대를 나온 사람들은 베레모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기를 북돋아주고 진지 구축과 전술지휘를 도맡았다. 그래서 군대를 가본 적조 차도 없는 생각 없는 폭도들은 군사정권 치하에서 특수부대나 해병대에서까지 장기복무를 하고 영관장교까지 있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약탈 행위를 하기란 불가능했다.

 

이후 폭동이 진압되고 뒤이어 뉴스를 본 군인들과 경찰들이 한인들을 불법 무기 소지죄로 체포하려는 찰나에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은 모두 장난감 총이었고, 미니건은 쇠 파이프로 급히 만든 장식용이였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실제 총기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 안 됐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을 방문한 미군의 장성들은 자기의 부대조차도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진지를 만들지 못한다면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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