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피의 1st 정보/사회

북한에서 발생한 반란과 폭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알아보기

Cappie's Wiki 2015. 5. 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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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정말 폐쇄적이고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의 권한이 조선시대의 왕보다 훨씬 강력하고 신격화되어있는 북한 사회안에서 반란과 폭동 그리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거라고 상상해보신적이있는가? 물론 필자도 저렇게 폐쇄적인곳에서 민주화를 향한 열의자체가 없을것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한에서 4.19혁명 보다는 못하지만 작은저항이 대한민국의 역사보다 훨씬 많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오늘은 한 국가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이분들이 했던일을 기억하고 여러분께 알리기위해 글을 적게 된다.

 


 1. 1976년 해주폭동


 

1976년 황해도 해주에서는 김일성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하여 대규모 인민봉기가 일어나게된다. 이에 북한 김일성 정부는 협상이고 뭐고 해주 주민들과 해볼생각 자체를 하지않고 즉시 4개여단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폭동 가담자뿐만 아니라 죄없는 마을주민까지 합하여 대략 3만여명을 무차별 학살한다. 현재 해주의 인구가 27만명인걸 감안했을때 그중 3만명이 사망했으면 매우 큰 규모이다. 한국에서 발생한 5.18 광주사태때는 백만명중 165명의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의해 사망한걸보면 북한은 최소한의 인권자체를 무시하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해주폭동은 학살에서 끝나지않고 해주 그리고 근처에있던 도시인 개성주민들이 폭도들에게 선동당했다고 판단하고 전원을 정치범수용소에 보낸뒤 죽을때까지 강제노동을하게 만들었다. 

 


2. 1987년 온성 정치범수용소 폭동


 

1987년 5월에 온성 정치범수용소에서 어느 정치범이 노역을하고있던 도중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간부가와서 그를 구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순간적인 감정으로 화를 억누르지못하고 맞는사람은 그간부를 역으로 폭행하기 시작하고 주변에있던 2백여명쯤되는 죄수들까지 순간 격노해서 간부를 죽을때까지 폭행한다. 이후 그들은 열의를 가라앉히지못하고 간부들의 사저까지 쳐들어가서 죽였으며 이과정에서 다른 죄수들이 선동당하고 합세하게되어 폭동 규모는 5천을 넘기게되었다. 이에 주변에있던 정치범수용소의 병력중 일부를 급파하여 비행기를 격추하는데 쓰이는 고사포와 기관총등을 이용하여 폭동에 가담하지않은 죄수까지 모두 학살하게된다. 이때 이들이 만약 경비원들을 모두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해서 북한군과 교전했다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을것이고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도 실렸을것이다.

 


3. 1988년 황해 제철소 노동쟁의


 

1998년은 북한이 겪은시기중 가장 고단하고 힘들었던때인데 이당시의 식량난으로 수십만명이 죽어가고있었다. 더군다나 강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제철소 작업의경우 더욱 많은 식량이 필요했는데, 당시 상황으로썬 그게 불가능했고 이에 제철소 간부들은 몰래 중국에게 압연 철판을 팔아버리고 그댓가로 옥수수를 받게된다. 하지만 얼마가지못해 이사실은 김정일의 귀에들어가게되고 이에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황해제철소를 가동하지못하도록 간부들과 모의하였다고 판단하고 간부들과 주변사람 몇명을 노동자들앞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한다. 다음날 상관의 죽음을 보다못한 노동자들은 일을멈추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북한은 기갑부대와 기관총등을 동원하여 수천명을 학살하고 추가적으로 죄없는 인근주민까지 사살한다.

 


4. 1992년 프룬제 군사 쿠데타 사건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의 프룬제 군사대학을 나온 북한 군인들이 모의한 쿠데타 사건이다. 소비에트 연방도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이지만 고르바쵸프의 집권으로 자유도가 많이 상승했으며 경제상황도 북한보다 훨씬좋았다.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이들은 소련과 중국의 개혁개방을 보면서 북한또한 이런게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위해 김일성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다름아닌 군사 퍼레이드때 동원되는 전차를이용해 김일성을 대포로 날려버리는것인데 소련의 KGB가 실수로 정보를 흘려서 실패하게되고 쿠데타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되고 친러파들은 정부로부터 눈엣가시를 받게된다.

 


5. 1995년 6군단 쿠데타 사건


 

북한의 함경북도에 위치했던 6군단은 사실상 북한의 입장에서는 후방부대에 불과하여 별로 신경쓰지않았으며, 이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딱좋은 위치에 있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자 이름모를 어느 중장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전체를 뒤엎기로 결심하고 군단장을제외한 거의 모든세력을 쿠데타에 가담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게된다. 그들의 계획은 특공대를 평양에보내 주요시설을 점령한다음 이들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6군단 병력 대부분을 평양에 출동시키고 돌변해서 김정일과 경비병력을 사살하고 정권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군단장이 외부로 사실을 알릴까 두려워 독살을하게되지만 새로 부임한 군단장인 김정일의 측근 김영춘은 자기도 독살당할까봐 두려워 반란 주동자들에게 리원 비행장에서 회의를 하자는 명분으로 모이게한뒤에 모두 체포하고 사살했다. 이과정에서 10년이 넘는 군대생활을 견디고 전역을앞둔 죄없는 병사들도 일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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