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말기, 일본은 희망도 자원도 싸울의지도 점점잃어가고있었지만 수뇌부들은 단단히 미쳐있었다. 미해군과 태평양에서 전투를벌이면서 일제의 대함전력은 거의매일같이 패배하고있었고 하다못해 훈련용선박까지 동원시켰다. 계속벌떼처럼 몰려오는 연합군의 함선들을 부술방법을 고안해내는데 그게바로 카메카제 특공대이다. 간단하게 비행기에 폭탄을싣고 적의 선박을향해 돌진해서 박으면 끝이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첫등장
때는 1942년 전세는 점점미군에게 기울게된다. 이름모르는 필리핀주변의 섬을 방어하고있던 일본군은 연합군이 곧 상륙할거라는 정보를 알게된다. 하지만 방어군은 이에맞설 화기도 병사도 부족했고 가진거라고는 몇대의 비행기가전부였다. 급한나머지 사령부는 자원병을뽑아서 각항공기마다 연합군의 함선 1척씩을 자살공격으로 침몰시키라고한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첫등장에 미해군은 당황해서 큰피해를입었고 이후 감명받은 수뇌부는 이전술을 계속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무려 비행기1대가 비싼함선1척을 격침시키니 사실상 비도덕적이지만 효과적이였지만 이는 미군들이 카미카제의 정체를 알지못했을때부터였고 나중에는 함선에 충돌하기전에 주변에있는 호위기에게 격추당하거나 대공포에맞고 나가떨어지는경우가 빈번히발생했다.
일본이 밀리기는하지만 나름싸울만할때인 1943년경에도 카미카제 특공대를 조직하여 몇년간 훈련을받은 베테랑 파일럿들을 수장시켰다. 나름 훈련을 잘받아서그런지 목표물에는 잘꼬라박았지만 이후에는 인력이부족해져서 대충몇달간만 비행조종연습을시키고 전장에 내보냈는데 초보 파일럿들은 연합군 함선의 경험치가되는경우가 대부분이였고 이때문에 날이가면갈수록 일제의 공군전력은 약해져만갔다.
거기다가 이들은 목표물이 수송선이든 유조선이든 여객선이든 아군이든간에 어짜피죽는데 아무데나 들이받자고 생각하여 미군에게 결코 큰피해를 줄수없었다.
따라서 핵심전력인 항공모함을 파괴시키는 일은 매우희박했고 죄없는 유조선이나 싸구려 몸빵용선박만 피해를입었고 최악의경우 1000명이 꼬라박기를 시도했지만 이중 파괴된 적의함선은 3척밖에 안되는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정신나간짓이라면서 반대하는 장성들도 굉장히많았는데 가장높은데서 명령을하니 어쩔수없었다.
카미카제 조종사 선출과 이들의 심리상태
모집은 자원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었다. 전세가불리해지면 파일럿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카미카제 특공대에 들어갈사람은 손을들라던지하는식으로 뽑혔다. 10명중 9명은 손을들을정도였지만 사실상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담보로한 자살공격에 참여하고싶지않았을것이다. 그들이 자원한이유는 어쩔수없는 의무감때문이였다고 생존자들은 말한다. 나머지1명은 가정에 문제가있거나 부상이심한사람들이 대부분이였고 후에이들은 지휘관으로부터 미움을받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장먼저 자살공격에 동원되기도했다. 물론 정부에게 세뇌당한 일부미치광이는 일본제국주의와 천황 히로히토를위해 죽을수있다고 스스로 목소리높여 카미카제 특공대에 들어가기도했다.
출정할때까지 이들은 꼬라박기훈련을 받았고, 이후 하루전날에는 가족들과 동료들과 함께모여 이별파티를 열었다. 당연히 파티분위기는 우울하기만했고, 죽음에대한 두려움을잊지못한 일부 파일럿들은 함성을지르고 가구를 부쉈다.
당일에는 유서를작성하거나 가족에게 편지를보낸뒤 일본의 전통술인 사케를 마시고 천황폐하 만세를외친다음에 삶의마지막을 같이보낼 항공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이를어기고 군에 출석하지않고 몰래 은둔생활을할경우 그에대한 강력한 처벌은 가족들에게 돌아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알고보면 이들도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생존사례
사실상 생존하는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살아남은사람도 일부있었다. 어느 조종사는 육안에 포착된 미해군의 항공모함으로 총알과 포탄을 기적적으로 피하고 가까이다가가여 안전하게 착륙한뒤에 항복해서 살아남았고, 장착된 포탄이나 어뢰를 소진한뒤에 뻔뻔하게 일본군기지로 돌아왔다. 그러면 지휘관들은 화를엄청나게내기도하지만 이런 미친짓을 반대하는 지휘관들도 많아서 오히려 어깨를 다독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자살공격을위한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후 일부 미친놈들은 착륙장치를 제거해버리고 타고내리는 유리창을 용접시키기도했고 착륙하는방법이나 기지로돌아오는 방법자체를 훈련과정에서 제외시켜버린다. 예초에 기름을 아주적게넣어서 다시돌아오기라는 불가능하지만 운이좋은사람은 무인도에 착륙해서 살아남기도했다. 어떤사람은 이런저런핑계를 이유로 여러번 출격을 거부하거나 다시귀환했지만 이후 총살당했다.
대전말기 카미카제로 사용하기위한 항공기의 부족
나름쓸만한 비행기들은 전부다 바닷속에 수장되었으니 이제 연습용 항공기나 1차세계대전때 끌고다니던 속도가 아주느린 복엽기에 폭탄을 가득싣고 출격하였다. 그러다가 이마저도 생산할능력이안되자 자살공격전용기라고 볼수있는 오카를 개발하게된다. 어떻게하는거냐면 폭격기에 오카를 장착한다음에 목표물이 발견되면 폭격기에서 버튼을눌러 강하시켜야한다. 그러면 오카에탑승한 조종사들이 알아서 잘조준해서 박아야되는데 명중률이 극악이였다고한다. 하지만 그러기도전에 미공군이 출현해서 폭격기와함께 잿더미가되는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비행기로만 자폭을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일본제국 해군은 다량의 구식어뢰를 보유하고있었는데 오래되어서 유폭위험도커지고 성능도 말도못하게 나빠서 결국 자살용 어뢰로 개조를하는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가이텐이라는 유인어뢰를 만들게되는데 처음에는 조종사를배려한 탈출장치가 달려있었지만 더많은 폭탄을 장착하여 무게가늘어나서 탈출마저 불가능하게됬다. 거기다가 조종방법도 엄청나게 어렵다. 예를들어보자면 자동차를운전하는데 핸들이3개라고 생각하면된다. 그래서 훈련도중에도 사망자가 7명이나 발생했다. 거기다가 내부도 좁아서 적의함선을 찾기전에 질식사하는게 대부분이다. 총 330개가 생산되었는데 연합군에게는 큰피해를 주지못했고, 4척을침몰시킨게 전부였다.
이외에도 60kg가 넘어가는 잠수복을입고 2m짜리 막대앞에 폭탄을붙여 물속에서 적의함선을 격파시키는 방법이 논의되었는데 훈련중에 무려 300명이넘는 사망자가나왔고 다행이 투입전에 전쟁이끝났다.
신요라는 자살용보트도있는데 작은보트에 폭탄을싣고 전속력으로 적의 함선에 충돌해서 격파하는원리인데 이러면 개나소나 죽기싫어서 탈출하거나 연합군에게 항복하는게 당연해서 성과를 거두지못한다.